산타 죽이기

 크리스마스.

 나는 크리스마스가 싫었다. 정확히는 크리스마스이브가 싫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나는 크리스마스이브가 휴일이 아니라는 게 싫었다. 내가 크리스마스 기간을 싫어하게 된 건 순전히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이었다.

 

 나는 혼혈아였다. 혼혈아이긴 해도 북유럽 계통의 전형적인 백인이었기에 학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신비한 느낌이 감도는 아이라는 긍정적인 평판까지 나 있었다. 게다가 밝은 성격. 평범한 정도의 사교성. 자연스럽게 모이는 친구들. 내 유년시절은 불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나는 유난히 집중적으로 놀림을 받곤 했다.

 "크리스!"

 내 이름을 부르는 친구들.

 "너네 할아버지가 산타여서 좋겠다? 선물 많이 받아라.

 "야, 그런 말 하지 마. 증조할아버지면 어떡하려고."

 유치한 농담. 바보 같은 웃음. 나 역시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때리는 시늉을 했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나빴다. 짜증 나. 놀리지 마. 친구들에게 한껏 놀림을 받고 온 날이면 나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곤 했다. 당신은 한국에 귀화했으면서 왜 내 이름은 외국식으로 지었는지, 왜 하필이면 성을 어머니 따라 마 씨로 했는지, 이것저것 트집을 잡으며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렸다.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하는가? 인정한다. 나는 예민하다. 지나치게 예민하다. 그리고 이런 성격은 내가 자라는 동안에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서른 중반. 다섯 살짜리 아들을 둔 가장.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서먹해지고, 그런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늙어가는, 그저 그런 평범한 한국의 남자.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가 되어야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겠지. 그리고 내 자식과 사이가 멀어졌을 때 아버지를 생각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겠지. 우울한 생각이 밀려오는 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아버지는 아직 안 돌아가셨으니까. 나는 아직 그 마음을 모르니까. 그리고 오늘은 크리스마스. 우울한 생각에 잠길 시간은 없다. 나는 아버지로서 자식의 산타가 되어야 한다. 산타가 될 수 있을 때 산타가 되어주어야 한다. 자식의 유년시절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사명감. 그것이 내가 크리스마스의 새벽에 깨어 산타의 이름으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는 이유였다.

 "크리스, 아직 안 자니? 잠깐 이리로 와라."

 힘없는 목소리. 나의 아버지. 한숨. 아버지 말을 못 들은 척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적다가 문득 손이 멈췄다. 관계의 회복이라. 그래, 아버지께서 부르시잖아. 따라야지. 급하게 쓰느라 엉성해진 문장으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한 나는 편지가 들은 봉투와 포장된 선물을 아들의 머리맡에 놓은 뒤 아버지의 방에 들어갔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싫었다.

 "예의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게 진짜 한국인다운 거야. 아는 어른 만나면 인사하고, 버스에서는 자리를 양보해야 해. 나이 많은 어른을 공경하는, 그게 진짜 한국인이란 말이다."

 아버지는 유난히 한국인답게 행동하는 것에 집착했다. 유난스럽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유난스럽다고 할 것도 없었다. 귀화한 사람에게 그 정도의 집착은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난 싫었다. 한국인 운운하는 꼴이 아버지 당신을 더욱 한국인답지 않게 만들었다. 잊고 지내던 나의 출신을 떠오르게 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한국인다움을 교육할 때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던 나의 하얀 피부와 푸른 눈은 곧 부끄러운 게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이건 내가 아버지를 싫어하게 된 원인이 아니었다. 내가 아버지를 싫어하게 된 건 이보다 더 유치한 사건을 통해서였다.

 

 "부르셨어요, 아버지?"

 말투를 예의 바르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의도한 대로 잘되지 않아 적당히 꾸민듯한 말투가 나왔다. 왜소한 몸집. 낡은 잠옷. 굽은 허리. 주름진 손. 마찬가지로 주름이 잔뜩 잡힌 얼굴. 초점을 잃은 눈동자. 색이 바랜 머리카락. 초라하게 늙어가는 남자의 모습 앞에서 내 말투는 공손함을 갖추지 못했다.

 "산타. 산타 말이다."

 힘없는 목소리. 아버지는 혼잣말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산타요?"

 "그래. 산타 말이다. 기억해봐. 예전에, 말해줬잖아. 산타 이야기."

 "무슨 말 하시는 거에요?"

 여전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아버지에게 시치미를 뗀다. 사실은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고 있었다. 그건 너무나 유치해서 누구에도 말하고 싶지 않은, 내가 아버지를 싫어하게 된 이유였다.

 

 "알아요, 산타 없는 거."

 열네 살이 끝나가던 무렵의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아버지가 산타에 대해 할 얘기가 있다는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사춘기 소년 같은 반응. 아니, 그 나이면 사춘기 소년 맞구나. 이렇든 저렇든 나는 아버지가 밝힐 진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진실. 산타는 없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 쓴웃음. 열네 살의 나는 또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최대한 어른스럽게 보일 행동을 했다.

 "난 산타가 없다고 말한 적 없는데?"

 천진난만한 장난기가 가득한 아버지의 웃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하는 나.

 "산타는 있어. 그냥, 일을 안 하는 거지."

 "예?"

 "이건 아주 오래된 이야기란다. 오래전 산타는 크리스마스가 오면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집에 찾아가 선물을 나눠주곤 했지. 하루 안에 수많은 아이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건 힘든 일이었을 거야. 그래도 산타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줄 수 있다는 게 행복했겠지. 산타는 오직 그 하루를 위해 일 년을 바쳤을 거야. 그런데 어떤 남자가 산타를 불쌍하게 여긴 거지. 온종일 고생하는 산타를 위해 내가 할 일이 없을까, 하고 말이야. 그래서 그는 산타를 대신해서 자신의 아이에게 선물을 줬단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말했겠지. 우리가 산타를 돕자. 너희도 너희의 자식들에게 산타를 대신해서 선물을 주려무나. 내가 이게 아주 오래전 얘기라고 했지? 오래된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변하기 마련이야. 처음에는 산타를 돕자고 한 일이 나중에는 산타는 없다는 식으로 잘못 전해진 거지.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산타가 되어주고, 자식이 크면 진실을 밝힌다. 내가 너의 산타였다. 너도 너의 자식을 위해 산타가 되어주렴.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야. 산타는 있어. 단지 일을 안 하고 있을 뿐이지. 온 세상의 모든 부모가 산타가 되었으니, 진짜 산타가 할 일이 뭐가 있겠니. 산타는 아마 지금 즈음 북극이나 남극에서 빈둥대며 루돌프를 쓰다듬고 있을 거다."

 "어쨌든 작년까지 선물을 준 건 아버지라 이거잖아요."

 긴 이야기를 마치고 멋진 말을 했다는 듯 웃고 있는 아버지에게 짧게 쏘아붙였다. 당황하는 아버지. 우물쭈물하며 맞다고 대답. 그 뒤로 내가 아버지에게 몇 마디를 더 했던 것 같기도 한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 이게 내가 아버지를 싫어하게 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잠시 변명을 하겠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 산타가 없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평범하게 선물을 기다리던 열두 살 꼬마는 친구들과의 시답잖은 수다에서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충격받았다는 식으로 말하면 놀림거리가 될 게 뻔하기에 나는 분위기를 따라 산타를 믿는 꼬맹이들을 비웃었다. 자신을 순진한 꼬맹이라고 놀렸다. 내가 나를 놀렸다. 그렇구나. 산타는 없구나. 산타는 아버지구나. 하지만 다음날 크리스마스 아침. 내 머리맡에는 선물과 편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열두 살의 꼬마에게 혼란이 찾아왔다.

 이 선물을 아버지가 사온 거라는 건가. 편지도 아버지가 쓴 거고? 그럴 리가. 이건 내가 아버지에게 사달라고 아무리 졸라도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던 거잖아. 이 편지도 봐. 마치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속속들이 아는 거 같아. 내 마음속을 알고 있다고. 아니야. 아버지가 산타일 리 없어. 산타는 산타야. 아버지가 아니야. 나는 이런 실낱같은 희망을 아버지가 진실을 말해주던 그날까지 품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산타를 죽인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산타를 죽였다. 믿음을 간직하고 살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졌어야 할 산타가 타인의 손에, 그것도 아버지의 손에 죽어버렸다. 나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줘야 할 사람이 도리어 희망을 부쉈다. 꿈을 지웠다. 동심파괴. 유년기의 끝. 내가 아버지를 싫어하는 이유는 분명히 유치했지만 그렇다고 타당하지 않은 건 아니다. 누군가는 이해해 줄 거라 믿었다. 누군가는 공감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같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나는 누군가 내 분노에 공감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잘 생각해봐. 예전에 말 해줬잖아. 산타 이야기 말이다."

 집요하게 물어오는 아버지. 계속 모르는 척하기도 슬슬 짜증 나서 나는 대충 말하고 상황을 넘기기로 했다. 관계의 회복은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구나.

 "예. 기억나요. 착한 사람이 산타를 도와줘서 산타가 일을 안 하게 됐다는 거죠?"

 "아니야. 쉬게 된 게 아니야. 일은 안 하게 된 거야."

 "그게 쉬는 거죠."

 침묵. 어색하게 돌아가 있던 아버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쉬는 거랑 안 하게 된 건 달라. 안 하게 된 건 산타가 그만뒀다는 의미가 아니야. 산타가 더는 일을 못하게 된 거지. 생각해봐라. 산타가 자신의 일을 힘들다고 생각했을까? 선물을 받고 기뻐할 아이의 얼굴을 생각하면 그런 마음은 들지 않아. 아이의 미소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 그만큼 많은 아이의 미소를 볼 수 있다면 산타가 하는 일도 할만할 거야. 그건 너도 애가 있으니 잘 알겠지."

 "애 이야기를 꺼내시면 대답하기가 좀……그보다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에요, 아버지?"

 "그리고 말이다. 산타가 정말 혼자서 그 모든 일을 했을까?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말이 안 되잖니. 어떻게 혼자서 그렇게 많은 선물을 구하고, 하루 안에 그렇게 많은 집을 돌아다니겠어. 산타는 혼자가 아니었을 거야. 산타 협회나 마을 같은 게 있었겠지. 그래, 마을이야. 그 마을에서는 크리스마스 단 하루를 위해 일 년을 바친 거야. 선물을 돌릴 계획을 짜고, 소원을 모으고, 순서를 정하고, 누가 어디로 가서 선물을 나눠줄까를 정하는 거야. 선물을 나눠 준 다음에는 이번 하루를 반성하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거지."

 "대체 무슨 소리를……."

 "그 사람!"

 갑자기 버럭 하고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고함에 깜짝 놀라 말문이 막혔다.

 "처음에 산타를 도왔던 그 남자! 그 남자가 정말 산타를 도우려고 한 걸까? 산타를 도우려고 그런 게 아닐지도 모르잖아. 그 남자는 그냥 산타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산타 마을에서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산타 마을에서 하는 일이 못마땅했던 거야. 그래서 산타를 돕는 척 산타의 일을 방해한 걸지도 몰라. 그렇다면 그 남자는 악당이야. 나쁜 놈이라고. 아니, 그 남자의 의도는 상관없어. 어떤 의도였어도 결국 그는 산타가 일을 못하게 만들었어. 산타 마을을 망쳐놨어. 그 남자가 산타 마을을 망친 거야. 몇 명이나 있었을지 모를 산타를 죽였다고. 그건 엄청난 죄야. 엄청난 범죄지. 남자는 그 죗값을 치러야 하지 않겠니?"

 "죄, 죗값이요?"

 "죗값을 치러야지! 아이들에게서 환상을 빼앗고, 꿈을 빼앗았는데. 당연히 죄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지! 그 남자는 벌을 받아야 하는 거야. 아이들에게서 산타를 빼앗을 죄를, 산타를 죽인 벌을 받아야 하는 거라고!"

 "잠시만요, 잠시만요."

 장황한 아버지의 이야기에 놓고 있던 정신줄이 겨우 돌아왔다. 이 양반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이상 장단을 맞춰주는 건 바보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도 너무 컸다. 이러다가 옆 방의 아내와 아이가 깰 것만 같았다. 나는 대충 대답하고 상황을 빠져나올 속셈으로 대답했다.

 "그 남자는 오래전에 죽었을 테니까, 자식들이 어떤 식으로든 죄의 대가를 받아야죠. 그게 맞는 거겠죠. 그렇죠? 저는 이만……."

 "그러면, 아들아."

 어느새 아버지는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여전히 왜소한 몸집이었지만, 아버지의 눈은 오래전에 봤던 또렷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릴 때 간혹 아버지에게서 느꼈던 신비한 느낌이 다시 감도는 듯했다.

 "너는 할 수 있겠니? 나처럼 도망치지 않고, 죗값을 치를 수 있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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